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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스크랩] 한국재벌의 창업비사(7)

by 무지개세상 2015. 9. 28.

 포스코 창업 이야기                           

  

                                                                     박태준 전 회장

불굴의 투혼 

 

1969년 3월 포철의 제철소 프로젝트는 경제적 타당성이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세계은행이 한국이 1억달러 규모의 큰 제철소를 건설하면 유에스 스틸 등 기존 제철소들이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우려를 반영하여 그런 결론을 내린 것이다. 박태준 포철사장은 미국 차관 도입이 물거품으로 끝나자 일본으로 부터 받게되어 있는 청구권자금의 일부를 전용하는 방안을 생각해 냈다.

그러나 그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대일 청구권자금을 사용하고 싶어도 자금 공여자인 일본 정부의 허락이 없이는 한푼도 쓸 수 없기 때문이다. 또 국내문제에서도 많은 논란이 있을 것이 뻔했다. 대일 청구권자금은 농업개발에 쓰게 되어 있어 공장 건설에 전용하는 경우 농민들의 심한 반발을 살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 사장은 오직 철강소 건설에만 몰두했다. 미국 차관도입이 물거품이 되자 귀국 비행기 편에서 가방에서 종이 한장을 꺼내어 계획을 다시 짜기 시작했다. 첫째 일본 철강업계로 부터 지지를 받을 것. 둘째 청구권 자금을 제철소 프로젝트로 전용포항제철은 당초 세계은행의 보증을 받아 미국 수출입은행으로 부터 융자를 받아 제철소를 건설하려는 계획을 추진했다. 그런데 세계은행은 시키도록 우리 정부를 설득할 것. 세째 일본 정부 관료와 국회의원들과 비공식 접촉을 통해 청구권자금 전용에 대한 지지를 확보할 것. 넷째 우리 정부가 전면에 나서서 일본 정부와 정식 협상을 벌기도록 촉구할 것 등 네 가지를 메모했다.

박 사장은 먼저 일본 철강업계의 지원을 받아야 일본 정부가 움직일 것이라는 생각에서 일본 재계의 명망가들인 철강업계 지도자들을 만나 방안을 찾기로 했다. 그는 곧 양명학자인 야스오카 선생을 생각해 냈다. 야스오카 선생을 일본 고위관료와 재계인사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일물이었다.박 사장은 일본에 도착하자 야스오카 선생 사무실을 찾는다. 서갑영 교수는 그의 저서 '철강왕 박태준 이야기'에서 일본 인사와 각료와 대화 내용을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선생님 그동안 안녕하신지요 오래만에 뵙겠습니다"

"박 사장님 매우 바쁘신 것 같군요"

"저는 미국으로 부터 돌아오는 길입니다. 국제 금융기관으로 부터 제철소 건설 차관을 얻는데 실패했습니다." "이제 일본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한·일간에 남아있는 청구권자금을 제철소 건설에 전용하려는 구상을 가지고 왔습니다.”

박 사장이 신중하게 말을 이어가자 야스오카 사장은 그의 말을 주의 깊게 듣더니

"당신 말이 옳습니다. 철강은 한국에 당장 필요한 것입니다"

"어떻게 도와드리면 되죠?"

야스오카씨가 선뜻 응해주는 순간 박 회장은 눈물이 날정도로 고마웠다.

"일본 정부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우선 일본 철강업체로 부터 강력한 지지를 받아야 합니다. 저는 철강업계 지도자들을 만나 그들의 지지를 호소하려고 합니다."

야스오카 산생은 일본 철강엽맹의 회장이자 일본 최대 제철소인 야하다 제철소의 이나야마 요시히코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나야마 사장님, 오랜만입니다. 지금 저의 사무실에 한국의 포항제철 박태준 사장이 와 계십니다. 그는 당신의 충고와 지지가 필요합니다. 한이 양국에 이익이 되는 좋은 구상을 가지고 있으니 가능하시다면 박태준 사장의 구상이 실현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주셨으면 합니다"

"오늘 오후 박 사장님을 저에게 보내주십시요. 선생님을 도와드리게 되어 큰 영광입니다. "

"감사합니다. 이나야마 사장님, 그리로 곧 가시라고 하시죠"

야하타 제철소 본사는 불과 한 블록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박 사장은 야하다 제철소 응접실로 안내되었다. 이나야마 사장이 응접실로 들어왔다

"박 사장님 이렇게 뵙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야스오카 선생님의 칭찬이 대단하셔서 꼭 만나고 싶었습니다."

"야나야마 사장님, 만나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박 사장님 우리가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 말씀해 보십시요. 야스오카 산생님이 대충 말씀해 주셨습니다만, 보다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박 사장은 그동안 미국 철강회사 등의 컨소시엄(KISA(Korean International Steel Association)가 국제자금을 조달하는데 협력하지 않기로 했다는 것을 전했다. 이나야마 사장은

"복잡한 컨서시업을 결성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다행일지도 모른다" 고 전제하고,

“설사 건설자금을 확보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사고방식, 기술, 관리방식 등이 상이한 사람들과 함께 힘을 합쳐 제철소를 짓는다는 것은 매우 어렵고 복잡한 일입니다. 특히 기술협력은 고도의 정치성을 띄고 있어 더 힘들다" 고 말했다.

"이나야마 사장님, 한국의 제철소 건설은 지금 진퇴유곡에 빠져있습니다. 지도 편달을 바랍니다."

박 사장은 말을 이어갔다.

"농림수산업에 사용하도록 지정된 대일 청구권 자금이 역 1억 달라가 남아 있는데, 이 돈을 자립경제의 초석이 되는 종합제철소 건설 자금으로 전용하고자 합니다. 청구권 자금을 전용하기 위해서는 양국 정부의 동의가 필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일본 철강연맹이 저희를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이나야마 사장은 잠시 생각하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중도 폐기할 위기에 있는 프로젝트를 구할 수 있는 좋은 구상을 가지셨군요. 어렵고 복잡한 일이지만 상당히 좋은 생각입니다. 하지만 청강연맹의 도움을 받는 문제는 다른 분들과 상의해야 합니다.”

이나야마 사장은 그렇게 말했지만 은연중에 일본만 참여하는 방식이라면 괜찮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박 사장은 그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 끈질기게 설득하기 시작했다. "한국의 제철소가 일본의 설비, 기자재, 기술 등을 가지고 세워지면 양국 모두에게 큰 이익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를 잘 이해할 수 있는 위치에 있습니다. 지리적으로 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공통점이 많기 때문에 의사소통에 따른 문제점도 없고 사고방식도 유사하니까요."

이나야마 사장이 한 가지 염려하는 것이 있었다. 자금 사정이아니라 일본이 한국의 포철을 도울 경우 국제적인 관례를 무시해서 KISA 회원국들과 미묘한 정치적인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까 염려하고 있었다. 일본이 처음부터 KISA 의 회원국이 되길 거부했기 때문에 일본과 구미 철강업계간에 갈등이 발생할 여지가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 포철을 지원하겠다는 태도를 보인 것에 대해 박 사장은 크게 감명을 받았다.

"내일 시간이 있으면 제가 후지제철소 나가노 시계오 사장을 만날 수 있도록 해드리겠습니다. 그 분에게도 당신의 구상을 설명하는 게 좋겠습니다, 나가노 사장은 당신을 많이 도와줄 수 있는 위치에 있습니다."

"이나야마 사장님, 기꺼히 도와주시겠다니 정말 고맙습니다. 이 사실을 박정희 대통령이 알면 매우 기뻐하실 것입니다. 정말 당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박 사장은 호텔로 돌아오면서 안도감과 희망이 솟아났다.

다음 날 나가노 사장을 만났다. 어제 이나야마 사장에게 말한 것처럼 포철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물론 한국은 종합제철소를 보유해야만 합니다"

나가노 사장은 서슴없이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제철소 없이는 국가의 산업기반을 다질 수가 없습니다. 일본은 어떠한 방식으로든지 한국을 도와야합니다. 그 첫 단계로 일본철강연맹은 포철 프로젝트에 대해 비공식적으로 타당성 분석을 할 수도 있습니다. 나가노 사장은 약간 유보적인 것처럼 보였으나 그의 진심은 돕자는 편으로 기울고 있었다.

귀국하자마자 김학열 경제수석을 만나 KISA는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고 보고한 뒤 대일 청구권 자금을 전용하자는 자신의 구상을 설명했다. 일본을 방문하여 이나야마 사장과 나가노 사장 등이 보여준 호의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결국 KISA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말씀이군요"

김수석은 위싱톤에서 제철소 프로젝트 대표단이 올 때까지 기다리자고 했다.

"시간 낭비에 불과합니다. 우리애개 남아있는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박 사장은 서두를 것을 촉구했다.

"선진국 농간 때문에 이미 10년이라는 세월을 낭비했습니다. 이제야 말로 우리 스스로 희망찬 미래을 만들어나가야 할 때라고 봅니다.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하지 맙시다. 각하에게 결단을 내닐 수 있도록 제 구상을 보고해 주십시오."

그러자 김 수석은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고 심사가 뒤틀린 듯 말했다.

"농림수산업에서 철강산업으로 대일 청구권을 전용하자는 아이디어는 사실상 실현이 불가능합니다. 국회의원의 50%가 농촌 출신으로 농업시책을 강력히 지지하고 있습니다. 그들 몫으로 배정된 자금이 사라지는 것을 보고 그들이 가만히 않자만 있을 것 같습니까?"

박 사장은 머리로 치솟는 화를 참으며 마음을 진정시키고 그를 설득하기 시작앴다.

"대일 청구권 자금은 본래 취지가 경재발전을 위해 쓰도록 되어있는 것입니다. 우리 농림수산업의 기계화도 그 발전의 일부이지요. 제철소를 세우면 트렉터와 경운기 같은 농기계를 우리 손으로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또한 조선소를 지어 어선을 건조할 수도 있습니다. 철강은 농림수산업과 대체관계에 있는 것이나라 사실은 보완관계에 있습니다. 그러나 김 수석은 그의 의견을 받아드리지 않았다.

그는 김 수석이 자기구상을 받아드리지 않자 박정희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 하기로 했다. 관례에 어긋나는 일이나 박 대통령은 고맙게도 반가히 맞아주었다. 그가 미국 차관 도입이 어렵게 되었다고 보고하자 실망한 얼굴로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박 사장이 일본 철강업계 대표들과 만나서 한 일을 보고하자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박 사장는 말을 이어갔다.

"각하 남아 있는 청구권자금만으로 충분히 제철소를 지을 수 있습니다. 청구권 자금을 쓸 수 없다면 포항은 영원히 황무지로 남을 것입니다. 정부가 1억 달러를 지원해 준다면 명세코 남은 자금은 제기 책임지고 조달하겠습니다. 프로젝트을 잘 진행시켜 기필코 성공해 보이겠습니다. 박 대통령은 한참 숙고하드니 감학렬 경제경제수석을 불렀다.

"청구권 자금이 얼마나 남아 있는가?"

"8천만 달러가 남아있습니다."

" 박 사장이 훌륭한 아이디어를 갖고 왔는데 청구권 자금을 돌려서 제철소를 건설하자는 게야. 자 이 구상을 잘 살펴 보도록 해"

박 대통령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자 박 사장은 일본으로 건너가 3대 제철소 사장으로 부터 지원해 주겠다는 약속을 받아 낸 뒤자 일본 정부 각료 중 청구권 자금 전용에 가장 반대 입장릉 보인 오히라 통산성 장관을 상대로 설득 작업을 폈으나 반응이 없자 온힘을 다해 말을 계속 했다.

"대신님, 한국은 지금 휴전선을 경계로 한 준전시상태입니다. 북한은 소련으로 부터 막대한 경제 및 군사원조를 받아 계속 군비를 확장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미 남한 보다 5배가 많은 철강을 생산해서 대규모로 무기를 만들고 있습니다. 자주국방은 한국이 직면한 최우선순위입니다. 한국의 안보가 튼튼해야만 일본도 공산주의 침략으로 부터 안심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에 제철소를 짓는 것은 수익성 뿐아니라 안보까지 고려한 일입니다."

박 사장을 오히라 장관의 표정을 보았다. 그는 이 말에 일응 수긍하는 표정이었다. 박 사장은 이에 힘입어 한국의 1일당 철강 소비량과 제 1차 및 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괄목할 만한 성과등을 설명했다. 드디어 그의 끈질긴 설득과 야스오카 선생의 영향력이 합쳐져 한국 제철소 건설이 결실을 맺게 되었다.

오히라 장관이 불쑥 자신의 한국과의 인연에 대해 말했다.  

"박 사장님, 사실은 제 아저씨가 포항에 사셨던 적이 있습니다. 경상북도 영일군 대송면에 있는 초등학교에서 교장으로 봉직했죠,

"아 재미있는 우연의 일치군요."

포철건설 계획의 긴 여정은 1969년 12월 3일 화려하게 막을 내린다. 양국이 이날 포철프로젝트 기본 계획에 서명을 한 것이다.  

    

종이 마패 

 

박 사장은 포철에서 첫 쇳물이 나올 때 지난날의 역경과 풍파를 생각하여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고 전한다.그리고 「포항제철에 건설자금을 빌려주는 일은 바보짓」이라고 당초에 보고서를 올렸던 미국의 A박사는 "내 보고서에는 틀린 내용이 전혀 없었다. 그 당시의 한국상황에서 지금 다시 그 보고서를 작성한다 해도 내용은 전과 똑 같다. 단지 박태준이란 인물이 나의 보고서를 틀리게 만들었을 뿐이다.

언젠가 중국의 등소평은 미국의 철강관련자에게 한국의 포철 같은 대형 철강회사를 중국에 건설하고 싶은데 도와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A박사는 중국에 박태준 사장 같은 거물이 없기 때문에 불가능한 일이라면서 협조를 거절했다는 일화도 있다. 포항제철의 부지를 마련할 당초부터 언론ㆍ야당ㆍ대모꾼들은 실패를 예단하고 있었다. 항차 공장건설을 출발도 하기 전에 어떻게 사원 아파트부터 짓느냐는 것이었다.그러나 투입된 국내외의 무수한 기술자들과 인력들이 건설현장에서 맡은 바 업무에 전념할 수 있도록 사전에 생활환경을 조성해야만 했다. 현장부근의 사원 APT가 선결과제였다.

또 하나의 문제는 큰돈·용돈을 달라고 수시로 공사현장에 찾아오는 인간 쓰레기들이었다. 정치인·공무원·언론인 등, 이들은 박 사장을 몹시도 괴롭혔다. 그는 대통령이 임명한 포항제철 건설의 지휘자였다. 그러나 정보기관으로부터 수차 가택수색을 받았다. 괴로웠던 그는 박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했다.

그러자 박 대통령은 ‘종이 마패’를 써주었다. 즉, 대통령 박정희가 직접 “박태준을 괴롭히면 누구든지 가만두지 않겠다"는 뜻을 종이에 또박 또박 적어 서명을 해준 것이다. 이와 더불어 박 대통령은 포항제철의 인사·자금 및 경영에 관한 모든 권한을 박 사장에게 위임했다. 이 때부터 '박태준의 철강신화'는 시작된다.

우선 박 사장은 사원의 공개채용과 투명경영을 원칙으로 하였다. 박 대통령이 써준 「종이 마패」는 박 사장에 대한 대통령의 인간적 신뢰였고, 두 거인의 우정적 징표였다. 포항제철(POSCO)은 지금 미국과 일본을 누르고 5년 연속 세계 제1위의 자리를 굳히고 있다. 선진열강들의 포항제철에 대한 부러움과 놀라움은 대단하다. 만약 박정희라는 카리스마리더와 박태준의 불굴의 투혼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결코 한국은 무엇 하나 제대로 만들 수 없을 뿐더러 설령 무엇을 하려해도 진행할 수 없었을 것이다.


  박태준과 박정희의 인연   

 

육사 생도 시절 탄도학을 가르치던 박정희 장군이 수학을 잘하던 박태준을 예뻐하며 인연이 시작된다.시간이 지나 박 장군이 5.16을 준비하던 중 박태준을 부른다. "임자는 일에서 빠지지. 잘못 되었을 때 내 가족들이나 돌봐줘" 박정희에게는 박종규, 김종필, 차지철, 이후락 등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부하가 많았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박정희 장군에게 박태준이 어떤 사람이었나 하는 답이 나온다. 박장군에게 박태준이란 제자이기에 앞서 가족들을 돌봐달라고 할만큼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영의정이 죽으면 손님이 없고 영의정 집 개가 죽으면 손님이 바글바글 하다는 속담처럼 박정희 대통령 서거 후,박정희에게서 덕을 보고 출세했음에도 어린 박근혜 남매를 모른척했던 많은 사람들과 다르게 소문에 의하면 박태준은 자신이 모신 상관의 자녀들을 마음으로 돌봐주었던 몇 안 되는 사람이라 전해진다. 5.16이 있기 직전 "임자는 일에 참여하지 말고 일이 잘못되면 내 식구들이나 좀 돌봐줘"라고 했던 스승 박정희의 말을 수십 년이 지나 잊지 않고 실천한 사람이 바로 철강왕 '박태준 회장'이었다.


최택만 지음 '한국대표급 겨영총수 비사' 중에서

출처 : 퐁당퐁당 하늘여울
글쓴이 : 효석 최택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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