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20151115)
< 웰 다운(Well-down) >
- 文霞 鄭永仁 -
숨 가쁘게 변모하는 현대사회에 적응해야 하는 인간군의 적용 트렌드가 변하고 있다.
인생의 기본적인 3단계 바램은 잘 살고(Well-being), 건강하고(Healing), 잘 죽는(Well-dying)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 3대 요소의 곁두리로 이즈음 대두되는 것이 있다. 잘 내려놓기 ‘웰 다운(Well-down)’이다.
특히 죽음에 앞서거나 인생을 마무리하는 노을 단계에서는 더더욱 내려놓기를 잘해야 한다.
이즈음 끔찍한 사건, 사고 중에는 욕심도 분노도 잘 내려놓지 못해 순간의 조절 능력 부족이 인생의 전체를 실패작으로 만든다.
웰 다운은 감정 조절능력이 크게 좌우한다. 한 마디로 순간의 선택이 일생의 불행을 자초하기 때문이다.
이는 법정 스님의 철학인 ‘무소유’와 여행가들이 말하는 걷기 여행에서의 깨달음인 ‘지닌 것 내려놓기’와 맥을 같이 한다.
무소유란 새로운 것을 갖지 않는 것보다는 있는 것을 버리는 것이다. 블랙홀 같은 욕심의 용광로에서 지닌 것을 내려놓는 것도 웰 다잉의 전초전이다. 아마 불교에서 말하는 고집멸도(苦集滅道)의 집착을 내려놓는 것이 아닌가 한다.
삶을 살다보면 옷장의 옷처럼 몸과 정신에 무언가 계속 쌓이게 마련이다. 마치 계륵(鷄肋)과 같이 버리기는 아깝고 두기는 그렇고……. 그런 것을 잘 조절하는 것이 웰 다운(Well-down)일 것이다. 특히 욕심, 분노, 좌절, 비교, 집착 등.
이런 실화가 있다. 우리나라 소록도에서 한센 환자들을 위해 새파란 청춘 나이에 왔다가 늙어서 오스트리아 본국으로 돌아가신 두 분의 수녀님이 계시다. 본국에 돌아가는 이유도 너무 늙어서 소록도 주민에게 짐이 될까봐서이다. 그 두 분의 수녀님은 올 때 가지고 온 가방 하나만 달랑 들고 떠나셨다.
우리는 이 세상에 올 때 아무 것도 가져온 것이 없고, 죽을 때도 아무 것도 가져갈 수 없다는 것을 늘 잊고만 산다. 그래서 배냇저고리와 수의(壽衣)에는 주머니가 없다.
그래도 인간은 죽음의 직전까지도 마음, 몸, 사물을 움켜쥐고 가려고 한다. 그게 인지상정(人之常情)인가 보다. 수십억, 수백억을 가진 재벌이 부모형제(父母兄弟)와 피를 튀기는 쩐(錢)의 전쟁을 벌이는 것도 다 내려놓지 못하는 집착의 속성이다. 어디 내려놓기기 그리 쉬운 일인가? 말은 쉽지만……. 그게 어디 재벌만 그런가?
그래도 인간들은 절대적인 진리인 ‘죽는다는 것과 아무 것도 가져갈 수 없다’는 것을 잊고 산다.
故 박완서 선생은 ‘잘 사는 것이 잘 죽은 것이다’고 했다.
이젠 내 나이도 ‘웰 다운(Well-down)’ 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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