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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내 나잇값은 얼마나 될까

by 무지개세상 2015. 12. 4.

내 나잇값은 얼마나 될까 / 김남철

 

출근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서면 전철역은 여전히 북적거린다.

1호선 하행선을 타기 위해 늘어서 있는 맨 끄트머리에 줄을 섰다.

항상 느끼는 일이지만 전철을 타기 위해 줄 서서 기다리는 시간은 무척이나 길게 느껴진다.

불과 5분 내외인데도 그런 것은 나만의 느낌은 아닐 것 같다.

드디어 열차가 도착하고 문이 열리자 안에 탔던 제법 되는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 사람들 다 내리는 것을 지켜보는 것도 무척이나 지루하게 느껴진다.

성질이 급한 건지 아니면 정말 급한 일이 있는 것인지 내리는 사람 틈을 비집고 타는 막가 파 아줌마도 있다.

온갖 질책이 쏟아져도 눈 하나 까딱하지 않는 것으로 봐서 내가 부러워하고 싶은 강심장을 가진 사람 같다.

그런데 그날 그 사람은 정말 이해가 안 된다.

내 나이 또래는 됨직한 늙은인데 줄 서 있는 사람 무시하고 어디서 나타났는지 그냥 사람 밀치고 타버린다.

소위 말하는 새치기라는 것이다.

이런 꼴을 보면 얌전하게 줄 서 있는 사람들은 무척이나 황당하고 화가 나기도 한다.

뭐라 한마디 하려니 옆에 있던 내 짝이 팔을 꼬집는다.

몇 차례 그런 상식 이하의 짓을 하는 사람에게 몇 마디 했다가 봉변을 당하기도 했으니 오늘도 그것을 염려한 것 같다.

기분은 상하지만 그런 봉변당하는 것이 걱정되는 다수 사람들은 아예 못 본 척 해버리니, 이렇게 변해가는 세상을 마치 도덕군자나 되는 것처럼 걱정하게도 한다.

그런데 그날은 내 바로 앞에 줄 서 있던 50대쯤 되어 보이는 사람이 그 질서 없는 늙은이에게 몇 마디 한다.

내가 해야 할 말을 그 사람이 대신해준 것 같아 무척이나 고맙게 생각되었는데,

일이 벌어졌다.

무법자 그 늙은이의 반격이 시작된 것이다.

고래고래 고함지르며 멱살을 잡고 자못 주먹을 휘두를 기세다.

사람들이 떼어 말려 주먹질은 오가지 않았는데, 양보 받은 자리에 잠시 앉아 있더니 또 벌떡 일어나 그 사람에게 돌진하며 젊은 것이 늙은 사람대우도 못하느냐고, 경로의식이 희박하다느니, 저런 자 때문에 우리나라 앞일이 걱정이라느니.....,

적반하장이란 말이 이런 경우에 쓰기 위해 나온 문자 같다.

또 내가 한마디 하려니 내 짝이 아예 입을 틀어막는다.

당하고만 있던 그 50대가 마지막으로 한 말이 가슴을 울린다.

나이 먹었으면 나잇값 해야지.”

한참이나 소란이 계속되니 지하철 순찰대인가 하여튼 제복 입은 사람이 나타나 떼어 말려 소란은 끝이 났는데,

그날은 무척이나 가슴이 답답했다.

전철 안에서 술판을 벌인 등산객들이 영광스럽게 일본에까지 소개되고,

늙은이의 폭행이 인터넷에 자주 올라와도 뭐 그런 일이 있을까? 과장되었을 거라고 반신반의 했는데, 현장을 보고나니 헛말이 아닌 것 같다.

요즘 젊은이들도 소위 버릇은 엿 바꿔 먹었는지 자기 편할 대로 하는 사람을 자주 본다.

껌 짝짝 씹으며 주위 사람은 안중에도 없어 하는 젊은 여성도 있고, 고래고래 고함지르며 전화하는 중년도 있다.

보기에도 노약자 같은 분이 빈자리에 앉으려는데, 동작 빠르게 엉덩이 먼저 밀어 넣고 자는 척 눈 감아버리는 얌체족도 있다.

특히 하교 시간 학생들의 무리를 만나면 어이가 없어진다.

하도 시끄러워 귀를 막고 싶을 때도 있다.

놀랍게도 그들이 내뱉는 말의 대부분이 욕설이니 이 일을 어쩌나.

가정에서 한두 자녀뿐이니 가정교육의 제로지대에서 그냥 막 큰 것 같아 앞날이 걱정된다.

요즘 애들 신체조건이 우리 때보다 상당히 좋아졌다. 키도 크고 덩치도 상당하다.

그런데 이 애들이 좌석에 앉아 다리를 꼬고 있으니 지나가다 그 긴 다리에 걸려 넘어질 뻔한 일도 있다.

주의를 주면 한번 흘겨보고는 아예 무시해 버린다.

그럴 때는 화가 나기도 한다.

어쩌면 난동을 부린 그 늙은이도 이런 꼴이 가슴에 맺혀 그랬을 것이라 이해해보고 싶기도 하다.

이런 눈살 찌푸리게 하는 모습이 보기 싫어 나는 전철을 타면 주로 출입문 근처에서 그냥 바깥 경치를 보는 것처럼 하며 서 있는 편이다.

좌석에 앉아있는 제대로 된 젊은이들에게도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그렇게 한다.

종종 젊은이가 자리 양보를 해줄 때에는 몇 차례나 사양하다 그의 성의를 무시하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아 마지못해 앉아 가기도 한다.

내가 닮고 싶은 그분의 흉내를 내보려 의식적으로 그렇게 하려고 애쓰는 편이다.

 

오래전의 일이다.

마침 출입문 근처에 앉아 가는데 다음 역에서 머리가 하얀 노신사 한 분이 타더니 좌우는 둘러보지도 않고 곧장 반대편 출입문에 서서 바깥을 쳐다보고 있다.

내가 일어나 여기 자리가 있으니 편히 앉아 가시지요.” 했더니 아직 서서 갈만 합니다. 그러니 젊은이나 앉아 가세요.” 한다.

재차 앉기를 권하니 일 많이 하는 젊은이가 편히 앉아가야지요. 아무 쓰잘데 없는 늙은이는 서서 가도 됩니다.” 한다.

그래서 아버님 석이 친구입니다.” 하니 그제야 뒤돌아보며 좌석에 앉으신다.

평소에도 그 친구의 행동이 반듯하고 어려운 사람 보면 자다가도 일어나 도와주는 심성이라 역시 가정에서 그 아버지의 영향을 자연스럽게 받은 것이라 여겨졌다.

나이 먹을수록 혹시라도 사람들에게 눈살 찌푸리게 하는 짓은 하지 않았는지 종종 뒤돌아보기도 한다.

나이 먹었다는 것이 무슨 벼슬도 아닌데,

늙은이 대접받기를 바라기 전에, 나잇값 못한다고 손가락질 받는 짓은 하지 말아야 하겠다.

출처 : 퐁당퐁당 하늘여울
글쓴이 : 추산령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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