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수필) 검은 유혹 / 문하 정영인
(수필) 2015-04-24
< 검은 유혹 >
- 文霞 鄭永仁 -
이젠 한국인도 명실상부한 커피 애호국가 국민이 되 가고 있다. 커피 없이 못 사는 마니아들이 되어 가고 있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커피를 마시는 횟수가 김치를 앞질렀다고 한다.
하기야 짜장면 먹고도 이 쑤시듯, 젊은이들은 분식집에서 2,500원 짜리 라면 달랑 먹고서 스타 벅스 같은 표준카페에 가서 4,000~5,000원 짜리 커피를 마셔야 직성이 풀리니 말이다.
이젠 낯선 나라 출신인 다문화 커피가 토종 숭늉을 몰아내고, 식사를 하면 으레 커피 한 잔 마셔야 하는 전 국민의 중독성 기호식품으로 자리매김하였다. 마치 본부인을 몰아내고 둘째 부인이 안방을 차지한 격이다.
이에 따라 한국의 커피 산업도 눈부신 발전을 한다. 유난히 입맛이 까다로운 한국인의 구미를 맞추기 위해서 마치 세계적인 화장품의 퍼스트 무버가 한국 여성이듯이……. 이젠 세계적인 표준카페들인 외국계 커피 전문점에 한국의 토종 커피 전문점들이 맞대결을 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또 한국의 커피 브랜드가 속속 외국의 입으로 진출하고 있으니 세상은 넓고도 좁다.
더구나 절묘하게 커피와 커피 믹스와 설탕을 브랜딩 시킨 믹스커피(막대커피)는 커피의 본 고장의 혀를 유혹한다고 한다. 마치 옛날 유행가처럼 “커피 한 잔을 시켜 놓고, 내 속을 태우는구려.”
나는 물론 커피에 대해서 문외한이다. 기껏 안다고 해야 아메리카노나 커피 라떼, 카프치노가 고작이다. 향이 어떻고 원산지가 어디고 등은 나에겐 어리석은 이야기가 된다.
오늘, 좀 고급스런 캔 커피인 ‘카페 드롭팜 카페라떼’를 마셨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아리비카 원두 100%, 버진 드립, 에콜랭 로스팅, 아로마 키핑 등이 적혀 있다.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하나도 모른다.
한국에 커피가 본격적으로 상륙하기 시작한 것은 6.25 때, 미군의 씨레이션 상자 속에 있던 커피가 아니었나 한다. 거기에 담겨진 1회용 쓰디 쓴 커피와 알 커피가 원조가 아닌가 싶다. 은박지에 싸여 있던 쓰디 쓴 커피를 핥아 먹던 그 맛이 지금도 선하다. 알 커피는 냄비나 옹달솥에 그득히 끓여 숭늉처럼 마시던 정경이 펼쳐진다.
하여간에 모든 문화는 생성되고 진화하다가 퇴화하다가 소멸된다. 그러나 커피문화는 퇴화하거나 소멸될 기색을 영 보이지를 않는다.
하기야 잠을 쉬 이루지 못하는 나도 카페인 든 음식을 먹지 말라는 당부에도 불구하고 하루에 두서너 잔은 마시나 보다. 그저 잠 안 오면 일어나고, 잠이 오면 잠자고 아니면 말고 식으로 생각하니 그럭저럭 적응이 되어 가고 있다. 한국인은 평균적으로 1주일에 13회를 마신다고 한다.
커피에 대한 일화는 무수히 많지만 커피는 우선 그 맛의 향기 때문일 것이다. 으레 커피 향에 대해서 인류가 줄곧 회자(膾炙)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남녀불문, 장소불문하고 웬만하면 테이크아웃 시킨 종이 커피잔을 들고 다니면 마시는 거리 풍경이 일상적이 되 가고 있다. 우리 집 옆의 외국 커피전문점에는 아침이면 젊은이들이 차를 타고 와서 테이크아웃 해 가는 풍경이 일상이 되 가고 있으니 말이다. 이젠 커피문화의 점령이다. 마치 한국의 아이돌 가수들이 노래와 춤으로 세계를 흔들 듯이…….
돌아가신 아버지는 커피보다는 설탕을 무척 좋아하셨다. 시쳇말로 설탕 마니아셨다. 혹가다 커피를 잡수시면 설탕을 듬뿍 치게 하였다. 얼마나 설탕 마니아셨냐 하면 설탕물에 찬밥을 말아 잡수시는 것을 유난히 좋아 하셨다. 그것도 누런 황설탕으로. 약주를 전혀 못 하셔서 더욱 그러셨나 보다. 그 당시 황설탕을 귀한 것이었다. 나도 아버지를 닮아서 그런지 나는 다방 커피식으로 커피 2, 프림 1, 설탕 2 스푼을 넣어야 커피 맛이 난다고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원두커피 애호가들은 나를 커피 야만인 취급을 한다. 하기야 커피 원산지 일꾼들은 커피에 설탕을 꿀처럼 타 먹기도 한다고 한다.
나는 그저 자판기 커피 맨이다. 여름철에 좋아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도 시럽이나 설탕을 듬뿍 쳐야 제 맛이 난다. 오늘도 점심으로 4,000원 짜라 콩나물 국밥 먹고서 즉석커피 머신에서 커피 한 자 마시고, 이를 쑤신다. 그나저나 기계적이고 기획적인 커피에 맛에 길들여진다는 것은 겁나는 일이기도 하다.
커피를 ‘검은 진주’ 라고도 한다. 그 생산의 어려운 땀방울 때문에 검은 땀방울이라고도 하나 보다.
프랑스의 외교관 탈레랑은 커피를 “악마 같이 검고/ 지옥처럼 뜨겁고/ 천사 같이 순수하고/ 사탕처럼 달콤하다.//”라고 예찬했다.
커피·커피믹스·설탕의 오묘한 지옥의 뜨거운 악마가 한국 사람의 코와 혀와 마음을 홀리고 있다.
그나저나 다음에 성묘 갈 적에는 술보다 그리도 좋아하시던 감주나 식혜를 올려드려야 하지 않을까?
한 잔의 뜨거운 커피를 마신다. 지옥과 천국을 오가며 악마와 천사와 사랑을 나눈다. 그나저나 걱정이 태산 같다. 커피 최대 원산지인 브라질이 최대 가뭄으로 원두 값이 치솟는다고 한다. 더구나 최대의 인구를 자랑하는 중국인들이 커피 맛을 알기 시작했다고 하니, 불 난 집에 부채질하는 꼴이다. 그나저나 한국도 기후 온난화 현상으로 아열대성으로 변하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식생(植生)도 자꾸 북상한다. 이러다간 한국도 커피 생산국이 되지 않을까?
자판기 커피 서민인 나는 그나마 믹스커피 값이 오를까 그게 걱정이다. 커피가 질병 예방, 뇌기능 향상, 졸음 예방, 우울증 감소에 좋다는 커피 건강학이 대두까지 하니…….
결국 나는 그 검은 유혹에 넘어가고야 만다.